목민운하도시

버드나무, 부들과 함께 하는 목민운하를 생각하며 - 함께 하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광동 민우 김창호 2010. 9. 6. 10:01
같은 꿈을 함께 꿉시다. 함께 하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통합 게시판
광릉숲(매초성사람) 조회 7 | 2008.05.28. 21:19 http://cafe.daum.net/k255/ze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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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함께 꿉시다.

함께 하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김창호


  저는 1991년 ‘강경대의 죽음’으로 요동치던 거리에서 미국을 이기는 진정한 투쟁과 자주국방을 이루어 나가는 길은 돌과 화염병이 아니라, 청년세대의 생산적인 노동으로 흘리는 땀이라고 역설했습니다. 


  시위대가 돌과 화염병으로 국가와 정부에 무엇인가를 요구하기 이전에 스스로 시위문화만 바로 잡는다면,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보다 품격 있는 국가가 될 것이며 우리의 이웃에게는 보다 많은 기회가 열릴 것이라 이야기했습니다.


  지금의 시위는 ‘촛불 문화제’라는 이름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제가 대학에 입학했던 당시 까지만 해도 시위대를 진압하는 전경은 시위대가 보도블록을 깨어 던지는 돌과 화염병에 피투성이가 되어야 했고, 시위대는 전경의 방패와 최루탄에 눈물을 흘리고 피범벅이 되거나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저를 가장 안타깝게 한 것은 시위대 주변 상가는 장사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기억으로 상인 분들은 최루탄과 화염병 때문에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라, 장사를 못해 생활이 어렵게 되어 흘리는 눈물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인문대 선배들에게 폭력 시위의 부당성을 역설하고 평화 시위를 천명하는 삭발을 제안해 실행했습니다.


  1학년 2학기 가을에는 학과 연극으로 “피터한트케의 관객모독”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시위…….  평화로운 시위…….


  저는 요즘 시위를 보며 ‘촛불’ 조차도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불필요한 낭비입니다.


  지금은 세계사에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는 ‘몽골’이라는 나라는 과거에 칭기즈 칸이라는 한명의 걸출한 인물을 배출하여 세계사를 지배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적 기반이 약해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현재 독일의 힘은 괴테의 힘이고, 영국과 미국의 힘은 셰익스피어의 힘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셰익스피어나 괴테 같은 인물 한 명만 나온다면 역사가 바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인문학의 총체적인 위기입니다.


  특이 ‘한반도 대운하’ 논쟁을 자세히 살펴보면 환경이 아니라 우리 시대 ‘인문학의 위기’를 나타내는 증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반도대운하’를 찬성하는 측에서 EU는 마르코 폴로 플랜 아래 운하를 확장하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는 논리를 주장하며, 네덜란드, 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의 운하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독일과 이탈리아 그리고 영국과 네덜란드 운하의 근원을 분석해 본 결과 EU의 마르코 폴로 플랜은 다름 아닌, 마르코 폴로의 저서 ‘동방견문록’에 기인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르코 폴로는 쿠빌라이 칸의 초청으로 원나라에서 17년간 머물며 대운하의 회통하단(回通河段), 제주하단(濟州河段), 황하단(黃河段), 소주, 오강, 항주 등 운하 연안의 성시(城市) 등을 견문하였습니다.


 그 곳은 본래 백제의 땅이었고, 고구려의 땅이었고, 당나라 속의 고구려로 불린 지청제국 이정기 장군의 땅이 아닌지요?


 그것을 따서 중국의 친환경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이 ‘마르코 폴로 플랜’입니다.


 그런데 「동방견문록 제2권 제72장」에


 “이 운하의 가치는 남북국토를 관통시키고 사람을 놀라게 하는 그 길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운하가 연안의 허다한 도시민에게 무궁한 복을 가져다 준 것이다.”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물길로 융성했던 고조선과 고구려 시대에는 모든 국토를 정전제(井田制)에 의해 개간하고 농경의 수리를 도모 했습니다.  더욱이 고구려 을지문덕 대장군의 살수대첩은 ‘목민운하’의 승리였습니다.


  당나라 태종대에 이 위공 문답에서 제갈량의 8진법을 설명할 때 그것을 고조선의 정전제(井田制)에서 유래했다고 말하며,


  “고조선의 영토와 문화를 답습한 고구려의 성읍이 정전제(井田制)였으리라는 것을 어찌 모르랴!  다만 정전제(井田制)와 군사적 관계를 깊이 몰랐던 것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저서 목민심서 공전육조 제2조 천택(川澤 : 수리시설의 관리)편에…….

川流逕縣 鑿渠引水 以漑以灌 與作公田 以補民役 政之善也.

천류경현 착거인수 이개이관 여작공전 이보민역 정지선야.


하천이 고을을 지나 흘러가고 있으면 도랑을 파서 논과 밭에 물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공전(公田)을 만들어 경작케 해서 백성들의 삶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것도 선정인 것입니다.



小曰池沼 大曰湖澤 其障曰陂 亦謂之堤 所以節水

소왈지소 대왈호택 기장왈피 역위지제 소이절수


작은 것을 못과 늪이라 하고, 큰 것을 호택(湖澤)이라 합니다.  그 막는 것을 보라 부르며, 방축 또는 제방이라고 하는데 이는 물을 조절하기 위함입니다.



此澤上者水之  所以爲節也.

차택상자수지  소이위절야.


이것이 택위에 물이 있는 것을 절(節)이라 하는 까닭입니다.



東土名湖 僅有七八 餘皆窄小 然且鋒合而不修矣.

동토명호 근유칠팔 여개착소 연차봉합이불수의.


우리나라에는 이름 있는 호수(湖水)가 겨우 7, 8군데가 있을 뿐입니다.  그 나머지는 모두 폭이 좁고 작습니다.  그나마도 잡초만이 우거져 있고 수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土豪貴族 擅其水利 專漑其田者 嚴禁.

토호귀족 천기수리 전개기전자 엄금.


토호와 귀족들이 수리(水利)를 제 마음대로 하여 오로지 자기 논과 밭에만 물대는 것을 엄중히 금지해야 합니다.



若瀕海限潮 內作膏田 是名海堰

약빈해한조 내작고전 시명해언


만일 바닷가를 따라 조수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파제를 쌓는다면 기름진 농토를 만들 수 있는데 이를 바다를 막는 제방이라고 부릅니다.



江河之濱 連年衝決 爲民巨患者 作爲堤防 以安厥居.

강하지빈 연년충결 위민거환자 작위제방 이안궐거.


강과 하천의 유역에 해마다 홍수의 피해로  백성들에게 큰 근심거리가 되고 있는 곳은 제방을 만들어서 백성의 생활을 편안토록 해야 합니다.



漕路所通 商旅所聚 疏其汎溢 固其堤防亦善務也.

조로소통 상여소취 소기범일 고기제방역선무야.


뱃길이 통하는 곳과 상인과 여행객이 모여드는 곳에 물이 범람하는 것을 소통시키고 제방을 견고하게 하는 것 또한  좋은 일입니다.


池澤所産 魚鼈蓮芡 菱蒲之屬 爲之歟守 以補民役 不可自取以養己.

지택소산 어별연검 능포지속 위지여수 이보민역 불가자취이양기.

     

못이나 늪에서 생산되는 물고기, 자라, 연, 마름, 부들 등속을 엄중하게 지켜서 백성의 삶에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수령이 스스로 취해서 자신을 살찌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겨레의 물관리 물이용 물배분 정책의 근본이었습니다.


운하를 반대하는 서울대학교 교수들 목민심서는 읽어 보았을까요?  마르코 폴로 ‘동방견문록’은 읽어 보았을까요?


그러면 운하를 추진하자는 측에 있는 학자들은 읽어 보았을까요?


특이나 강과 하천이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이고 잡풀만 무성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물관리에 대한 책임이 있는 공직자들은 읽지 않은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 주류에 있는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소위 명문대 나왔다는 사람들과 해외 유학한 사람들 수준을 보면 중학교 2학년 수준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부들과 함께 하는 목민운하’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는 우리는 보다 담대하고 보다 용기 있게 물관리 물이용 물배분 정책을 바로 잡자고 요구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들과 당당하게 경쟁해 나가면 됩니다. 


그들이 얼마나 기초적인 지식도 없으며 얼마나 무지한 인물들인지 밝혀 가며 말입니다.


‘광우병 논란’도 살펴보면 세계사 속에서 있었던 ‘조약’과 ‘협정’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일어난 혼란입니다.


세계사와 유럽문화사는 둘째 치고 ‘비스마르크’의 전기만 읽고, 이해한 인물들이 정부와 시민단체에 있으면 겪지 않아도 될 혼란들입니다.


‘문학’은 사람이 나아가야 할 좌표입니다.  좌표를 제시할 사람들이 현장에 없기에 지금 혼란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일과 자리는 많습니다.


그 동안 그들이 우리의 자리와 일을 마련해 놓지 않았다고 원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우리 스스로 찾아 나서지 않은 것을 반성하고, 앞으로는 당당하고 의연하게 우리의 길을 가면 될 뿐입니다.


이제 함께 묵묵히 걸어갑시다.   단지 한 사람의 꿈은 이상에 지나지 않지만, 함께 꿈을 꾸고 실천하면 현실이 됩니다.


우리의 앞에 고조선의 역사가 있었고, 대고구려와 대진국 고려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위대한 역사를 복원하고자 했던 다산 정약용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물관리 물이용 물배분 정책을 ‘부들과 함께 하는 목민운하’로 바로 잡으면 우리나라 국토의 경제성과 대한민국의 품격이 높아질 것입니다.


단군 국조님의 홍익의 이상, 광개토태왕님의 위대한 역사..  이를 복원하려 했던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꿈......


이것이 진정한 ‘한반도 대운하’ 아닐까요?


함께 꿈을 꿉시다.  함께 하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소설 광릉숲의 저자 김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