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호의 세상보기

광릉숲유네스코운동 - 근현대사 최고의 시인은 누구일까?

광동 민우 김창호 2008. 12. 6. 17:30

 

                                 근현대사 최고의 시인은 누구일까?

 

 

                                                                              김창호

 

  인류의 근․현대사에서 독일의 괴테보다 더 위대한 시인은 찾을 수 없을까?  좋은 문학 작품이란 어떤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문학인은 있는가?  한번쯤은 고민해 보았는가?


 다산 정약용 선생님은 당시 글 쓰는 사람들의 자세와 시에 대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역사적 사실을 인용한답시고, 걸핏하면 중국의 사례나 들먹이며 우리나라 문자는 한사코 배척하는데 정말로 볼품없는 짓이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내용이 아니면 그런 시는 시가 아니며,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는 내용이 아니면 시가 될 수 없는 것이며, 아름다움을 아름답다 하고 미운 것을 밉다 하며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그러한 뜻이 담겨 있지 않은 내용의 시를 시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음풍영월이나 하고 장기나 두고 술 먹는 이야기를 주제로 하여 시를 짓는 다면 이거야 말로 벽지의 시골 서너 집 모여 사는 촌선비의 시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에게 가장 많이 읽혀진 김구 선생님의 백범일지는 첫머리에 ‘여인신양아서(與仁信兩兒書)’란 제목으로 아들인 인(仁)과 신(信) 형제에게 보내는 서신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보니 다산 정약용 선생님과 백범 김구 선생님은 비슷한 행적을 남겼다.  그럼 백범 김구 선생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은 누구일까?


  "외로운 소자는 어렸을 때 스승의 가르침에 선생님의 말씀을 받잡고 내내 잊지 못하였습니다. 나라 잃고 안팎의 난리 속을 헤매다가 지쳐 쓰러질 때마다 선생님의 위대한 훈업에 격려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이시어! 이제야 저의 힘을 다하여 산 넘고 물 건너서 여기 선생님의 봉롱 가까이 왔사옵고 산같이 높으신 뜻을 받들고 조촐한 차림으로 모시옵니다."


  이 글은 광복 후 백범 김구선생님께서 환국하여 충남 청양의 모덕사에서 임정요인을 이끌고 최익현 선생님께 올린 '고유제문' 내용이다.  


  김구 선생님의 소원은 대한 독립이었다고 한다. 『단순한 독립이 아닌 이 지구상의 인류가 진정한 평화와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사상을 낳아 우리나라에서 먼저 실현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우리민족의 장래는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홍익인간이라는 우리 국조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백범 김구 선생님의 사상과 철학의 기틀을 만들어 준분이 면암 최익현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좀 더 깊이 분석해 보면 백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는 “요즘도 예전처럼 어른 모시고 독서에 열중하느냐?  혹시라도 내가 죄를 얻은 것을 빙자해 학문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라며 74세에 죽음을 앞두고 50세가 넘은 중년의 아들에게 쓴 면암 최익현 선생님의 편지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도 있다.


  나라를 위한 자신의 행동까지도 ‘죄’라고 표현하신 분…….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기준으로 살펴보면 이러한 면암 최익현 선생님이 최고의 시인이 아닐까?


  나는 대학시절 괴테의 ‘파우스트’를 공부하며 동농 이해조 선생님의 ‘자유종’이 괴테의 ‘파우스트’보다 더 위대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또한 전북 군산에서 피터한트케의 『관객모독』의 배우로 연극 무대에 섰을 때, 이해조 선생님의 『자유종』을 무대에 올리면 더 훌륭한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자유종』의 서두는 “일본도 삼십 년 전 형편은 우리나라보다 나을 것이 없어서 혹 세상 돌아가는 형편이나 혹 제 나라의 앞날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정신 나간 사람이라 여기거나 한심한 사람으로 보며 사람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했던 일본에서 토론문화가 크게 열리는 것이 마치 종교인들이 거리에서 전도하는 것처럼 되었어요. 입을 열면 민족의 장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삼인이 모여 술잔을 나눌 때도 세상사에 대해 이야기하니, 전국 방방곡곡의 남녀들이 십여 년을 농담과 잡담을 끊고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이야기하더니 지금은 아시아에서 제일로 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로 시작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소위 문학비평 또는 문화비평 한다는 사람들은 괴테의 ‘파우스트’와 이해조 선생님의 ‘자유종’을 깊이 있게 읽어 보고 분석해 보았을까?  솔직히 ‘파우스트’를 비롯한 괴테의 작품들은 문장도 평범하고 재미도 없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독일인들은 재미도 없는 글을 쓰고, 문장도 별로인 괴테를 대가라고 칭송하고 존경한 이유는 무엇일까?   모국어로 글을 쓰고, 그 시대를 아파하고 그 시대의 잘못을 바로 잡으려는 작가였기 때문이다.  괴테가 문화운동을 하기 전까지 독일의 대부분의 시인은 음풍명월이나 하고 프랑스어로 시를 썼다.


 그의 비서 에커만이 대작을 쓰고 싶다며 비결을 알려달라고 하자 괴테는  "처음부터 대작을 쓰려고 하지 말게. 미래에나 가능한 대작을 꿈꾸지 말고 지금 쓸 수 있는 것을 자연스럽고 생생하게 써 보게. 그럼 언젠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작이 만들어져 있을 걸세." 라고 했다고 한다.


   "자신이 시대를 지배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쉽게 살아라!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살면서 언젠가 자신의 진실과 정의가 퍼질 것이라고 믿어라! 그 동안 우리는 살아야 하니 세상의 변화에 상냥하게 자신을 적응시켜라!"


  "노력은 적게 하고, 많은 것을 얻으려는 곳에 한숨이 숨어 있다."


  "눈물로 씨 뿌리지 않고 밭이랑에 물을 주지 않고서야, 풍성한 알곡들을 거두리라고 우리는 기대할 수 없으리. 우리의 이렇듯 신비한 세계를 아무런 대가도 없이 얻을 수는 없으리니" 이상은 괴테의 사상과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시구이다.


  솔직히 괴테는 바이마르공국의 17살의 아우구스트 대공에 의해 만들어진 인물이다.  당시 바이마르의 인구는 겨우 6천여 명. 전쟁 때문에 도시랄 것도 없는 형편이었다.


  17살의 아우구스트 대공은 바이마르를 독일 권역의 중심 국가로 만들고자 하는 원대한 계획을 괴테를 재상으로 영입해 함께 실현하고 싶었다.  괴테와 아우구스트 대공의 노력으로 바이마르는 독일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그 기반을 괴테의 문학이 해 주었고, 비스마르크는 이를 통일 통일에 활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괴테의 작품 ‘파우스트’는 인식과 향락에 대한 무한한 욕망으로 인하여 악마와 계약을 맺고, 세상의 모든 욕심을 탐닉한 주인공 파우스트가 끝내는 인간으로서 인류을 위한 행위와 창조를 통한 공익을 위해 행동하는 삶과 인류의 문화생활을 위한 사업을 하는 것이 최상의 가치라는 것을 깨 닳는 내용이다.

  처음에는 아무런 걱정 없이 세상의 모든 욕망을 얻고자 하였으나, 수백만의 사람에게 마음껏 일할 수 있는 비옥한 토지, 즉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을 깨딿는다. 


  ‘근심 Sorge'이 내뿜는 입김으로 눈까지 멀게 된 파우스트는 내면으로 밝아지는 정신 속에서 자기가 만든 땅 위에서 풍년이 들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행복을 느낀다.    이러한 인류의 문화생활을 위한 사업에 열중하며 행복해 한다. 


  이러한 작품을 남겼기 때문에 독일 사람과 서양 사람들은 괴테가 최고의 시인이고 괴테의 작품이 훌륭하고 위대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문학한다는 사람들도 이것을 알고 괴테가 최고의 시인이고 괴테의 작품이 위대하고 훌륭하다고 평가하는 것일까?


  다시 한 번 고민해 보자.  괴테를 포함해 당신이 알고 있는 근․현대사 최고의 시인은 누구일까?  면암 최익현 선생님, 동농 이해조 선생님, 백범 김구 선생님…….  그리고 …….  나는 면암 최익현 선생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면암 최익현 선생님의 삶뿐만 아니라 선생님께서 남기신 글 또한 인류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이러한 관점에서 나의 글은 쓰였고, 앞으로도 쓰일 것이라 생각한다면 나의 글을 읽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부들과 함께 하는 목민운하를 생각하며 부들 효능 검색해 보세요.


소설 광릉숲의 저자 김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