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이 한탄강가에서 인류문명을 일으킨 이후 천손의 홍익문화를 이어 온 대진국 고려(발해)시대까지는 세계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인류사를 주도해 왔습니다.
특히 큰 영토를 지배하며 민족의 자주적인 역량을 마음껏 발휘해 왔으며, 이웃 나라에 정치적으로 크나큰 부담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고려의 등장 이후 점차적으로 민족의 자주적인 역량을 상실해 가며 인류사의 변방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고려 광종의 권력독점욕과 중국(한족)의 끊임없는 우리민족에 대한 분열정책과 이간정책의 결과입니다.
거란에 의해 대진국 고려(발해)가 무너지고 후삼국으로 분열되자 중국은 잠시나마 안심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구려의 후예임을 내세운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자 중국은 또다시 민족적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구려의 정신과 문화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고 함께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홍익이념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구려는 건국설화가 말해 주듯이 말똥 치던 청년 주몽이 창칼과 화살을 들고 세운 나라입니다. 이는 간단하게 설명하면 국민에게 모범이 되는 지도자는 국민을 부자로 살게 하고 외적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구려 사회는 시조가 말똥 치던 마정이었다는 설화를 통해 장군이나 관료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말똥을 치우는(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치는 사회구조로 합의되었기에 백성들의 자발성을 이끌어 내어 당대 제일국가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말똥 치던 사람(국민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지도자)이 서로 크게 유익케 해서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지향하며 문벌(文伐)했기에 정복의 대상이 스스로 성문을 열고 고구려의 깃발아래 천손의 나라로 통합된 것입니다.
고구려의 존경받고 사랑받는 국가지도자는 말똥치던 시조 주몽왕, 마캐던 온달장군 농사짓던 을파소, 소금짐을 진 미천왕 등인 것입니다. 낙원은 열심히 일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며, 부강한 나라는 바로 말똥치고 소금파는 일에서 시작하고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고조선과 고구려의 국가 지도자와 국민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고려 광종 이후 우리 민족의 지도자가 되는 과정이 변질되었고 국가이념과 사회이념도 변질되었습니다.
이것이 곧 민족사 불행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958년 고려 광종 9년에 후주에서의 쌍기가 귀화해 고려에 과거제도의 도입을 건의하였습니다.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를 수용한 과거제도는 조선이 멸망하기 직전까지 우리나라의 인재 선발 방식이었으며 지도자그룹을 형성시키는 제도였습니다.
과거제도가 도입된 후 우리민족은 세계문화의 변두리로 전락했으며 자주적으로 외침에 대항할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고려시대의 과거시험은 승려의 자식, 향소부곡의 특수 계층 및 중죄를 지은 죄인을 제외하고 신분상으로 양인이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 응시하여 국자감시에 합격한 사람은 예부시에 떨어지더라도 군역(軍役)을 면제받는 한편 진사라하여 사적에 등재되어 사회적으로 입사직(入仕職)의 대우를 받는 신분으로 파악되었으며 자신의 호적에도 명시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생원시에만 합격해도 면역(免役)의 특권이 부여되었고 각 지방에서는 사림으로 행세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습니다. 과거제도 등장 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시(詩)·부(賦)·송(訟)·책(策) 등 문학의 역할은 군역(軍役)을 면제받는 도구였으며, 일과 노동을 면해 사림으로 행세케 하여 백성을 착취케 하는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말똥을 치며 나라를 지키고 경제를 살찌우는 노동을 해야 관료가 되고 국가지도자가 되어 자신의 경험과 경륜을 살려 국민을 부자로 살게 하고 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무를 국가지도자의 역할이 병역과 공역을 면제받아 백성을 착취하는 위치로 전락한 것입니다. 쌍기가 고려 광종에게 과거제도를 건의한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일하는 사람과 군인을 줄여 나라를 허약하게 만들고 국가지도자그룹을 국가와 국민의 기생충으로 전락시킨 것입니다.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던 지식의 역할을 기생 끼고 술 마시며 국민을 착취하는 부류의 명분의 도구로 전락시킨 것입니다.
통일된 고려가 왕건의 고구려의 계승자임을 자처한 유훈에도 불구하고 고조선과 고구려의 영광을 회복하지 못한 것은 쌍기로 인해 홍익의 민족정신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홍익이상과 이념, 생활문화를 찾아야 할 때입니다. 바로 고려 광종 때 쌍기가 전해 준 유교적 이상과 사회구조에 종지부를 찍고 다시 홍익이념의 천손의 사상을 되살려야 합니다.
쌍기가 천하게 만든 소금장수를 귀하게 만들어 우리 시대의 미천왕을 찾아내고, 쌍기로 인해 부정되었던 마굿간지기는 지도자가 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임을 각인시켜 우리시대의 광개토태왕을 찾아내야 합니다.
위의 글은 소설 광릉숲의 저자 김창호가 2000년 경에 한탄강 네트워크 기획팀장 시절에 쓴 글입니다.
광릉숲 부들과 미나리가 참으로 아름답지 않나요? 주몽태왕님의 부들....
광릉숲 부들을 공기정화식물과 하천과 강의 수질정화식물로 보급하면 어떨까요?
주몽태왕 부들 검색해 보세요.
우리시대에도 부들과 함께 하는 목민운하.... 부들의 자원성을 회복시켜 보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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