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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시 청계천에서 김창호 생각 - 우리는 모두 낙랑공주님의 후예들이다..

광동 민우 김창호 2010. 2. 20. 19:18

아래의 글은 2004년 12월 23일 포천문화인의 밤 교양강좌를 듣고 쓴 글을 옮겨 온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낙랑공주님의 후예들이다


2004년 12월 23일 포천문화인의 밤 교양강좌로 "동명성왕의 자랑스런 후예들"에 대한 대진대학교 인문과학대학 사학과 서병국 교수의 강의를 듣고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서병국 교수의 강의는 남자를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하여 커다란 오류를 범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현재 모두 낙랑공주님(고려 태조 왕건 태왕의 큰 따님)의 후예들이다.

특히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와 청나라를 세운 태조 누르하치도 낙랑공주님의 후손이다. 그래서 백두산은 청과 조선의 성지로 국경 두나라의 역사 초기에는 분쟁이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김동삼 장군, 김좌진 장군, 김구 선생이 누르하치의 성지인 백두산과 만주를 무대로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낙랑공주님의 후손으로 청태조 누르하치와 같은 혈족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이것을 잊고 있는 것은 일본제국주의자와 중화사대주의자의 이이제이의 결과때문이다.

서병국 교수의 강의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면 다음과 같다.

1. 궁예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신라의 왕족출신이 맞다. 궁예의 후손 순백은 광산이씨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2. 금나라의 유래는 청나라의 역사서 "만주원류고"에 금나라의 태조에 대해 "신라의 왕 성을 따라 국호를 금이라"한다는 기록이 있다.

3. 여진족의 뜻은 고구려와 발해(진)의 땅에 사는 사람들의 뜻으로 여진족이라고 낙랑공주님께서 고려 땅에 사는 사람과 구분하기 위해 부른 명칭이다.

4. 고려 태조 왕건 태왕은 동명성왕 주몽의 후예가 맞다. 정확히 말하면 백제를 세운 온조 대왕의 후손이다.

그 이유는 왕건이 궁예의 명으로 후백제의 땅 나주를 정복할 때 호족 오다련이 신하의 예를 갖추고 땅을 받쳤다. 또한 왕건 태왕의 가문은 바다의 제왕으로 산둥반도의 장보고의 후예들을 지배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5. 고려 태조 왕건태왕은 경순왕이 나라를 양국하니 관광 순화 낙랑왕으로 봉하고 신란공주를 아내로 맞게 하고 그 지위를 태자보다 높게 하였다.

이후에 낙랑왕으로 봉해진 사람은 없다. 백두산과 만주지방을 기반으로하여 금나라와 조선 그리고 청나라가 건국되었을 뿐이다.

6. 청나라 황제 성 애신각라(愛新覺羅)와 낙랑공주가 경순왕을 위해 지워진 정자 "도라정"의 뜻을 "신라를 다시 세운다"이다.

7. 낙랑공주가 정자를 세우지 않았다면 그리고 이름을 짓지 않았다면 역적으로 죽음을 당하게 되었을 것이다. 낙랑공주는 고려 3대 정종, 4대 광종의 누님이 되며 5대 경종의 고모이자 장모이다. 서열로 따지면 고려 태조 왕건태왕 이후에 여왕으로 등극하셨을 분이다.

8. 마의태자 김일과 궁예의 후손들을 역사에 드물게 살았다. 이는 낙랑공주님 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9. 조선 3대 태종 대왕은 "경순왕 후손들을 대대로 사랑하고 그 후손에게 녹을 주고, 비록 신분이 낮더라도 여러 가지 군대 복역과 부역 및 과거 등에 특별히 보아주되 침범하지 못하게 말리도록 간곡히 칙령을 내리노라"고 교지를 내렸고,

10. 조선 19대 숙종대왕도 "경순대왕 자손의 녹봉과 사랑하는 법전이 국전에 적혀있어 분명히 상고할 만하고로....." 전지를 내렸고

11. 조선 21대 영조대왕도 "경순왕 후예들을 예우하는 것은 선대 임금때부터 전해오는 전교이니 선조를 따르므로서 금석과 같은 법전이로다"고 전교를 내렸다.

12. 조선의 역대 왕들의 전교는 자신들이 경순왕과 낙랑공주의 후손임을 나타낸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선조는 고려 무신정권의 실각자로 백두산으로 피신하여 목숨을 보존한 뒤 경순왕의 후손과 결혼하여 조선을 건국하는 역사를 만들었던 것이다.

13. 조선(朝鮮)은 "해뜨는 나라"라는 뜻이다. 이는 경주와 금성 그리고 신라를 연상케 한다. 즉 낙랑공주가 세운 "도라정"의 철학이다.

14. 금나라, 조선, 청나라의 건국 과정이 비슷하다. 그리고 청나라 해군제독 정화의 세계원정은 고려 왕건의 서역 원정과 성격이 비슷하다. 이는 모두가 뿌리가 같음을 연상케 하고, 경순왕 이후에 낙랑왕에 봉해진 사람이 없는 것은 후손들이 낙랑공주님의 "도라정"의 정신에 맞게 새로운 제국을 건설했기 때문이다.

15. 고려의 북진정책은 경순왕이 낙랑왕으로 봉해지는 순간 없었다. 즉 낙랑왕은 고려 태자의 서열보다 위였으며 실질적으로 초창기 왕들의 매형과 장인의 위치였다.

미추왕본기에는 "경순대왕이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어진정치가 동방삼한에서 총명한 임금이었다. 오랑캐들(만주지방) 풍속을 다 없애고 악인들을 없애버리니 만백성은 대궐뜰에 엎드려 절하였다." 그리고 고려 5대 경종에 이르러 경순왕이라는 시호를 받고 장단의 능에 묻힌다.

결국 역사의 모든 수수께끼는 낙랑공주님에게 있다. 우리는 언제나 남자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해 왔다. 특히 마홀지역(파주시, 연천군, 포천시, 양주, 강원도 철원군 일원)은 고려 태조 왕건 태왕이 낙랑공주의 후손들에게 많은 땅을 내렸다.

마홀은 언어학적으로 매초성과 같다. 즉 매초성은 마홀의 이두식 표현으로 추정된다. 마홀군은 광개토태왕이 만든 지명이고 초창기에 관아는 고모리에 있었다.

고모루성에 오르면 고구려의 졸본(홀본)성을 기술해 놓은 것과 같은 형태를 띄고 있다. 그리고 장수태왕대에 와서 마홀군의 관아는 반월산 아래로 옮겨온다.

광개토태왕비에 나오는 고모루성이라는 지명은 언어학적으로 마홀과도 일맥상통하며 큰 마을 즉 수도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고모루성은 온조 대왕이 고구려에서 내려와 수도(서울)로 삼았던 지역이 아닐까?

궁예는 후고구려의 진정한 주인이자 고구려 동명성왕과 백제 온조대왕의 후손인 왕건에게 양국하고 자살한 것은 아닐까? 또한 고려 태조 왕건 태왕은 신라의 땅은 아들에게 양위했지만 고구려의 땅은 큰 딸인 낙랑공주에게 양위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지금 낙랑공주님의 계보를 찾아 역사를 다시 써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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