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 환단고기 이야기[내용출처 : 환단고기 안경전譯(상생출판)]북부여기 상 (복애거사 범장 撰)
[** 원 문 해 석 **]
(한무제의 침략을 격퇴한 고두막한)
재위 13년 계유년에 한나라 유철(무제)*이 평나*를 침범하여 우거를 멸하더니 그곳에 4군*을 설치하려고 군대를 크게 일으켜 사방으로 쳐들어왔다.
이에 고두막한이 구국의 의병을 일으켜 이르는 곳마다 한나라 도적을 격파하였다.
이때 유민이 사방에서 호응하여 전쟁을 지원하니 군세를 크게 떨쳤다.
재위 34년 갑오년 10월에 동명국 고두막한이 사람을 보내어 고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이로다. 장차 여기에 도읍을 정하고자 하나니, 임금은 이곳을 떠나도록 하시오”* 하니, 임금께서 난감하여 괴로워하셨다.
이달에 고우루단군께서 근심과 걱정으로 병을 얻어 붕어하셨다.
아우 해부루가 즉위하였다.
(해부루의 가섭원 부여 건국)
동명왕 고두막한이 군대를 보내어 계속 위협하므로 임금과 신하들이 몹시 난감하였다.
이때 국상 아불란*이 주청하기를 “통하 물가에 가섭원*이란 곳이 있는데, 토양이 기름져서 오곡이 자라기에 적합하니 가히 도읍할 만한 곳입니다>” 라고 하였다.
임금께 권유하여 마침내 도읍을 옮기니, 이 나라를 가섭원 부여, 혹은 동부여라 한다.
[** 주 석 **]
* 평나 : 지금의 하북성 창려입니다.
* 아란불 : 동부여의 재상으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와 삼국유사 동부여에도 보입니다.
* 가섭원 :
가섭원의 전거는 삼국사기 고구렵본기 동명왕 조에도 보입니다.
가섭원은 지금의 만주 흑룡강성 통하현입니다.
* 한사군
한국 고대사에서 가장 큰 쟁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사군입니다.
지난날 중국 사가들과 일제 어용사학자, 그리고 이 땅의 반민족 사가들까지 한사군 문제를 왜곡하여 우리 고대사를 중국 한나라의 식민지 역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사서 날조는 물론 유물 조작도 서슴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그 허구성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복기대가 ‘임둔태수장을 통해 본 한사군의 위치’ 라는 논문에서 임둔태수장이 요하 서쪽 금서시에서 출토된 사실을 폭로하자 기존의 학설은 설 땅을 잃게 되었습니다.
묘청의 북벌 운동 실패 이후 근 천 년 동안 우리 역사를 그늘지게 했던 반도사관의 장막이 걷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여 ‘한강 이북을 중국이 차지하였던 영토’라고 주장하는 근원에는 한사군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학계에서 주류를 이루는 학자들은 북한 평양 지역에 있는 중국계 유적. 유물들을 한반도 한사군설의 결정적인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1915년 조선총독부에서 평양과 황해도 지역을 낙랑. 대방군으로 못 박은 것을 현재까지 정설로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은 이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의 연대를 BCE 3세기 이전부터 BCE 1세기 말까지로 발표하였습니다.
낙랑군이 설치되었다는 BCE 108년보다 훨씬 앞선 시대의 것이며 한사군이 설치된 지 얼마 안 되어 사라진 유물이라는 것입니다.
한사군을 설치했다는 당시의 인물 사마천도 사기 조선열전에서 “드디어 조선을 정벌하고 사군을 삼았다”라고만 하고 사군의 이름을 적지 않았습니다.
또한 평양에 낙랑군이 있었다는 중국 기록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일제는 정치적 목적으로 조선사편수회를 두고 우리 역사를 왜곡하였습니다.
한사군을 한반도 내로 끌어들여 ‘우리 역사가 식민지에서 시작된 것으로 조작’하였습니다.
이덕일은 중국이 밑돌을 깔고 일제가 못을 박아 왜곡시킨 ‘평양 지역 한사군’은 광복 후에도 조선사편수회 촉탁이었던 이봉도와 그 제자들이 주류를 형성한 우리나라 학계의 정설이 되어 역사의 뿌리를 단절시켜 버렸다고 개탄했습니다.(이덕일-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40~60쪽)
* 천제의 아들
고구려 시조 고주몽이 “나는 천제의 아들이다”라고 말한 바 있고 광개토대왕비 비문에도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동한(25~220)의 채옹이 지은 독단 상권에도 “천자는 동이족이 부르던 호칭이다.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하는 까닭에 천자라 부른다” 라고 하여, 천자 라는 말이 중국 것이 아니라 본래 우리 동방 조선족의 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본래 우리나라가 천자 나라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명백히 밝혀 주는 기록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칭제건원을 하게 된 연원은 환인천제께서 여신 환국 시대의 신교의 삼신 사상에 있는 것입니다.
천자라는 말은 본래 삼신상제님의 정신을 체득하여 삼신상제님을 대행하여 그 진리(신교)로써 세상을 교화하고 다스리신 환웅. 단군을 천제자라 한 데서 연유하였습니다.
이 신교의 삼신 사상이 중국사의 시조라 일컬어지는 황제헌원 때에 (사실은 그 이전에) 중화로 건너가 한 차원 낮은 天사상으로 바뀌면서 천자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요. 순과 하. 상. 주 시대를 지나 춘추전국 시대에 이르러 6국을 통일한 진왕 정이 중국 최초의 천자로서 황제가 되었을 뿐입니다.
즉 중국에서 천자 제도가 시행된 것은 2,200년 전 일입니다.
우리 동방 한민족이 배달 시대부터 환웅을 ‘天帝子’라고 부른 것에 비하면 2,600여 년이나 지난 후세의 일입니다.
* 동명 :
흔히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을 동명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명은 졸본에서 동명국(졸본부여)을 세우고 즉위한 고두막한의 호입니다.
그래서 고두막한을 동명왕이라고도 합니다.
삼국사기에는 동명과 주몽을 같은 인물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김천령(연산군 때의 문관)은 자신이 지은 부에서 “동명이 창업하고 주몽이 계승하였다”라고 하여, 동명과 주몽이 전혀 다른 인물임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동명 이라는 호칭은 몽골어에서 흔히 발견되는 Tumn 의 음역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 칭호는 대족장. 만호장 이라는 뜻으로 흉노제국의 두만선우처럼 유목 군장의 이름에서 자주 발견됩니다(박원길, 유라시아 초원제국의 샤머니즘 252~256쪽)
* 서안평 :
서안평은 내몽고 임황으로 지금은 임동 또는 파림좌기라 합니다.
종래 학계에서는 서안평이 평안도 의주 맞은편 압록강 변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나라 때 요동군 서안평현이 압록강 변에 있었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서안평의 위치는 요사 지리지에 "상경 임황부는 본래 한나라의 요동군 서안평 땅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거란이 세운 요나라의 수도인 상경 임황부가 본래 한나라 때 요동군 서안평현이 있었던 곳임을 분명히 밝힌 것입니다.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도 “서경 압론부는 본래 고리국이요, 지금의 임황이다. 임황은 후에 요나라 상경 임황부가 되었는데, 곧 옛날의 서안평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상의 기록에서 한나라 때 요동군이 지금의 요하 동쪽에 있지 않고 ‘난하 동쪽’에 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고구려 당시 요수는 지금의 요하가 아니라 난하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해 둡니다.
[출처 :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254~257] — with 김영수 and 44 oth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