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환단고기 이야기[내용출처 : 환단고기 안경전譯(상생출판)]단군세기3세 단군 가륵 재위 45년3. 한글의 시원과 고조선 원형 문자
[** 원 문 해 석 **]
재위 2년 경자(단기 153, BCE 2181)년, 이때 풍속이 일치하지 않고 지방마다 말이 서로 달랐다.
비록 상형, 표의 문자인 진서*가 있어도 열 가구 정도 모인 마을에서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많고, 땅이 백 리가 되는 나라에서는 서로 문자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가륵단군께서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시어 ‘정음 38자’를 짓게 하시니 이것이 가림토가림토*이다.
글자는 다음과 같다.(사진으로 대체)
재위 3년 신축(단기 154 BCE 2180)년에 신지 고설에게 명하시여 배달유기*를 편찬하게 하셨다.
[** 주 석 **]
* 진서 :
신지 혁덕의 녹도, 태호복희의 용서, 자부의 우서, 치우천황의 화서, 단군왕검의 신전 등으로 추정합니다.
* 가림토 :
신숙주의 18세 후손 신경준은 여얌유고-운해서에서 “우리 동방에 옛날부터 민간에서 사용하는 글자가 있었지만 그 수가 다 갖추어지지 않았고, 그 형체에 일정한 법이 없어 한 나라의 말을 다 형용하고, 한 나라의 쓰임을 다 갖추기에는 충분하지 못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덕무의 청비록에는 10세기 후반에서 11세기 초에 장유가 중국의 강남에 갔을 때 고려에서 떠내려간 ‘슬슬“이란 악기의 밑바닥에 쓰인 글을 중국 사람들이 읽지 못하자 한문으로 옮겨 주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은 고려에 일정한 고유글자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이종호-과학으로 푸는 우리 유산 : 고조선에 신지글자 있었다. - 中 )
* 배달유기
우리나라 최초의 역사책이라 할 수 있으나 현존하지 않습니다.
[출처 : 환단고기 역주본 (안경전-상생출판) 원문 110~111쪽] — with 최원녕 and 4 oth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