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호 뉴스 미디어 비평

KBS 역사 스페셜 - 금나라 아골타는 신라의 후예이다. 를 보고..

광동 민우 김창호 2009. 9. 5. 22:01

아래의 글은 2006년경에 본 블러그 '김창호의 세상보기' 코너에 올린 글입니다.

 

'노고산 할미재 장생'의 의미를 찾으면 좋겠습니다.

 

 

KBS 역사 스페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려태조 신성황제 왕건태왕님의 큰 공주님이시자  상주국 낙랑국의 낙랑대왕님의 신란궁주이시기도 한 낙랑공주님의 역사를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낙랑공주님의 역사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 북방사를 이해하기 힘이 들 것입니다.

 

아래의 글은 - 2006년 경 작성

 

 

경북 상주의 구석기 유물은 인류 최조로 증명되었던 한탄강의 전곡리 유적보다도 10만년 전이라고 합니다.

고려를 침입한 소소녕의 직함이 동경유수였으며, 신라계의 서희의 설득에 강동6주를 돌려 주고 돌아간 것은 민족의 화합을 위한 결단이었습니다.

즉 거란족은 중국사가 아니라 김알지 계의 역사로 우리 민족사입니다.

이차돈은 신라 황실 사람으로 불교를 받아들이려다 순교하고 그를 따르던 많은 무리가 고구려로 귀순(지금의 정치적 망명)합니다.

우리 고구려 부흥운동을 일으킨 이진충과 이정기 장군이 후손이 되며, 신라 황실에서 나왔으므로 거란이라 칭하게 된 것입니다.

훗날 대진국 고려, 거란 요, 여진 금나라가 서로 협력하고 싸운 것은 뿌리가 다른 것과 당나라 종족의 이이제이 정책때문입니다.

특히 통일신라에 편입되지 않은 마홀사람들이 바로 말갈족입니다.

통일 고려에 편입되지 않은 마의태자를 비롯한 신라 사람들이 거란족입니다.

그랬기에 대진국 고려의 권력을 큰 소요없이 승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금나라를 건국한 여진족의 추장 아골타는 고구려와 대진국 고려의 땅을 승계하고자 하던 낙랑공주(고려 태조 왕건의 큰 따님)의 후손으로 말갈족의 발해, 거란족의 요나라를 통일하고 다시 금나라로 승계한 것입니다.

요즘 드라마 장보고를 보면 이사도는 이차돈의 후손으로 신라계 유민이고, 궁복이라는 이름의 장보고는 고구려계입니다.

그래서 둘은 화합할 수 없었고 이사도도 과거 신라 황실의 후예이므로 자미부인을 통해 신라에 원군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궁씨는 고구려계 토평궁씨로 궁예도 외가가 고구려계였으므로 신라의 왕이 되지 못하고 후고구려를 세운 것입니다.

민족적으로 이사도를 폐망시킨 장보고는 영웅이 아니고 반민족주의자가 아닐가요? 후예 장보고의 종말은 자신의 딸을 신라 왕과 혼인시키려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신라계와 고구려계의 오랜 갈등 이것이 우리 민족의 발전의 걸림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궁복을 당나라 사람들은 장보고라고 표기했습니다. 그럼 당서에 나오는 말갈족은 마홀사람들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의 지역감정처럼 당시도 고구려계와 신라계의 갈등이 국익과 민족의 이익에 크게 걸림돌이었나 봅니다.

후예 고려 태조 왕건 대왕님의 첫째 따님이신 낙랑공주께서 마의태자를 살려 주고, 고려 태조께서 경순왕(고려 5대 경종때 시호)을 우리 겨레의 신화속의 나라

즉, 고구려계와 백제계의 뿌리인 낙랑국의 관광순화 낙랑왕으로 봉하고 서열을 고려의 태자보다 높다고 선포하므로써 고구려계와 신라계의 오랜 갈등은 일단락되고 마의태자의 후손들이 고구려계를 기반으로 요나라를 세우는 계기가 됩니다.

대마도는 낙랑공주님과 경순왕의 첫째 아드님인 경주사심관이 관할하던 땅으로 경주김씨의 위토로 김알지계 자손들의 종중땅입니다.

이는 내륙에서 경주사심관이 관할하던 땅이 셋째 아드님인 의성사심관이 관할하던 땅보다 적었다는 것이 증명합니다.

그리고 조선말까지 경상도관찰사가 대마도주를 임명하였으며 조선중종때에 왜구가 침범할 때 경순왕의 후손이었던 김안국을 관찰사로 파견하니 왜구가 진정되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또 뉴스에 경북 상주의 유물은 세계 최초의 유물이라는 한탄강의 전곡리의 유물보다도 10만년 이전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 민족의 역사가 반만년이 더 되며, 신라는 금족, 태양족으로 단군 조선를 건국한 부여족과는 다름을 유추할 수 있으며, 후에 고려 태조 왕건 대왕 대에 혼인정책으로 진정한 단일민족을 이루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찌 되었든 대마도는 김알지 계의 종중땅입니다. 우리의 종중 땅을 찾는 것은 작게는 우리 종족의 권리를 회복하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우리 겨레의 역사를 찾는 것입니다.

뜻을 함께 하고자 하는 분들의 참여를 부탁 드립니다. 

 

위의 글은 저의 조부님께 전해 들은 역사를 참조하여 정리했음을 밝힙니다.

 

감사합니다.

 

위의 글은 2006년 경에 블러그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