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위자안지의 정치인 김안국 선생님과 목민운하
김창호
우리 시대의 가장 큰 화두는 대한민국을 혁신적으로 바꾸는 내륙운하건설이다. 그런데 확실하게 역사적 기록으로 확인된바는 없지만 우리나라의 국가 혁신 방안으로 물길복원과 내륙운하 건설을 생각한 분은 김안국 선생님이라고 전한다.
김안국 선생님은 당시의 조선을 고대 홀본과 같은 무역국가로의 전략을 가지고 내륙운하를 추진했다고 전한다. 드라마 주몽에서 홀본(※ 졸본이 아닌 忽本이 맞는 표현이라 추측됨)의 연타발을 상인의 우두머리 군장으로 우태를 단지 상단의 대행수로 그리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현대로 따지면 홀본은 지금의 싱가포르와 같은 국가구조를 이루고 있었으니 총통과 국무장관의 역할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부들과 함께 하는 목민운하를 생각하며, 주몽 부들 검색해 보세요.
김안국 선생님 시대의 조선은 각 지역에서 자체생산하여 조달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으며 약제품, 보석이나 장신구 등 특정제품만을 마차나 등짐 등의 방법으로 이동시켰다. 이러한 관계로 당시 조선은 무역의 발달은 생각조차 할수 없었고 상업조차 발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물길을 복원하고 내륙운하를 건설하면 상품의 대량이동이 가능하며 자원과 기술의 비교우위에 따른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므로 일본과 명나라에 비해 생산적 우위를 가져와 무역국가 체계를 갖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김안국 선생님은 경기도 여주와 이천의 이포나루에서 경상도 의성의 오토산과 안동까지 조각배를 타고 다니며 물길복원과 내륙운하 건설을 생각했다고 전한다.
현 시대에 내륙운하가 건설되면 김안국 선생님 시대의 역할을 하기 보다는 유가가 천정부지로 뛰고 석유에너지가 고갈 위기를 대비하고 도로와 철도건설로 인한 환경파괴를 줄이고 국토의 효율성을 높일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일자리가 창출되고 수자원 확보 효과와 관광레저 산업의 활성화도 기대된다.
물길복원과 내륙운하 건설을 생각했다고 전하는 김안국(1478~1543, 당대 최고의 권력자로 알려져 있는 김굉필 문하의 후배 조광조가 사간원의 정6품 정언으로 있을 때 사간원의 수장인 대사간을 지냄) 선생은 조선 중종 때 대사간, 공조판서, 예조판서, 대사헌, 병조판서, 대제학, 찬성, 등을 지낸 인물로 ‘왕도정치의 이상’이 백성을 부유하게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농사짓고 누애 치는 지식,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의학지식, 무역과 외교를 할 수 있는 통역 능력과 천문, 역법, 병법 등의 현실적인 지식이라고 했다.
이름 안국(安國)은 “‘위자안지(危者安之)’에서 따온 말로 위태로운 사람을 안녕케 한다."는 뜻으로 나라를 다스리거나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는 국민이나 무리를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TV 역사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당시 개혁을 부르짖는 정치가들이 기생을 끼고 '지치주의'와 '왕도정치'를 이야기 할 때 김안국 선생은 경상도와 전라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농서(農書)와 잠서(蠶書) 등을 백성들이 알기 쉽도록 한글로 번역해 보급하였다. 중종 37년에는 내의들과 함께 『분문온역이해방(分門瘟疫易解方)』을 편찬하였다.
또한 의학서 「벽온방」, 「창진방」 등을 간인하여 보급하였는데 이는 후에 허준(증조부되는 허지는 김안국 선생의 외조부가 됨)의 학습서가 되고 「동의보감」 편찬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전한다. 이러한 선생의 한의학적 업적은 조선시대 사대부로서는 유일하게 대한한의사협회가 선정한 한국의 의가 10인 중 한분으로 선정되어 있을 정도로 큰 것이다.
특히 김안국 선생께서는 중인 신분의 역관 최세진을 '동무'라 칭하며 가까이 하였으며, 1542년 중종 37년 최세진의 영전 앞에서는 7언율시의 만사(挽詞) '최동지세진만(崔同知世珍挽)'을 읊기도 하였다. 「훈몽자회」의 저자 최세진은 지금은 국문학사에 큰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로 존경받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1품 벼슬의 사대부와 중인신분인 역관과의 친교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중종실록에 의하면 한성부 판윤 김안국(金安國)은 생원 서경덕(徐敬德)19406) 과 유학(幼學) 유인선(柳仁善)19407) 을 천거하였다고 한다. 조선실록 홈페이지 “[註 19406] 서경덕(徐敬德) : 성리학에 밝았고 또 부모의 상에 여막(廬幕)을 지어 3년을 지내면서 능히 성효(誠孝)를 다하여 사람들이 모두 감복하였다. [註 19407]유인선(柳仁善) : 효도로 소문이 나서 정문(旌門)을 세웠다. “ 이를 보면 김안국 선생님은 효를 여러 가치 중 으뜸으로 본 것을 알 수 있다.
1541년 병조판서로 있을 때에는 외세 침입에 대비해 천문, 역법, 병법과 관한 서적의 구입과 국력 신장을 건의하였다. 특히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백성들도 글을 사용해야 하며 문화의 대중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손수 물이끼와 닥나무 그리고 부들을 화합하여 태지(苔紙)라는 값싸고 질 좋은 종이를 만들어 사용을 권장하였다.
지금은 펄프로 종이와 생리대를 만들어 사용하지만 당시 김안국 선생님은 경기도 이천에서 부들과 물이끼 그리고 닥나무로 모든 백성이 저렴하게 종이와 기저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연구했다. 더욱이 겨울에도 입은 것이라고는 다만 묵은 솜과 해진 굵은 베옷뿐인 백성들을 위해 부들솜으로 방한복을 만들었다
기묘사화로 인해 관직에서 물러나 이러한 일들에 열중하는 김안국 선생님을 시골 아낙들을 희롱한다고 곡해하고 모함하는 조정인사까지 있었으나 이웃집에 살던 부인(‘새벽강가에 해오라기 우는 소리’ 김동욱, 한국학연구총서.국문학·한문학, 소개)의 도움으로 면할 정도로 백성들과 함께 손수했다.
지금 일자리와 환율 그리고 환경 문제로 온 인류가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는 정부와 국회에 김안국 선생님과 같은 자세를 갖고 있는 공직자가 단 한명만 있다면 간단하게 해결 될 일이다. 또한 우리나라 대한민국 국민뿐만 아니라 온 인류가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와 번영의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라디오 방송을 듣는데 한 교육부 관리가 청소년들에게 추천할만한 직업으로 '경영컨설턴트, 회계사, 변호사, 에널리스트, 광고기획자, 인터넷정보검색사, 카피라이터, 외환딜러, 건축사, 변리사 등'만을 거론하는 것을 보고 오늘 나라가 어렵게 된 원인을 알 것 같았다.
지금 농촌에는 젊은 농부가 없다고 한다. 공장에는 외국인 근로자만 가득하다. 누가 오늘 우리의 농촌과 공장에서 우리의 젊은이들을 빼앗아 갔을까? 반상의 구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도 가장 비천하게 취급하던 향소부곡의 장인들이나 하던 종이와 기저귀 만드는 일을 손수한 장관이 있었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태왕은 청년시절 마굿간쟁이였으며, 평강공주와 결혼한 온달장군과 백제 무왕(서동)과 온달장군은 마캐던 소년이었다. 또한 명재상 을파소는 농부였으며, 낙랑군과 대방군을 축출한 미천왕은 소금장수 출신이다.
김안국 선생님은 "한집안의 번영은 자녀의 교육으로 보장되며, 빈부귀천과 재질을 따질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 교육은 필수적이다. 소질에 따라 무슨 직업이든 가르치면 한집안의 생계는 확보되며, 부유한 집과 벼슬 높은 집도 교육을 소홀히 하면 망한다. 금보다 책을 상속함이 낫고, 기름진 논밭보다 작은 재주가 낫다"고 했다. 이는 오늘을 사는 우리도 새겨야 할 지혜의 말이 아닌가 싶다.
청년시절 삽을 들고 기름때와 씨름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가치는 없는 것이다. 국가지도자와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바로잡히지 않고, 사회의 공기가 되어야 할 언론의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다면, 세상을 바로 보고 있는 국민 개개인이 네트워크가 되어 세상을 바꿔나가야 한다.
단지 한 사람의 생각은 이상일지 모르지만 바른 생각을 하고 있는 국민 개개인의 생각을 모아 실천하면 현실이 된다. 우리 모두 나부터의 실천을 통해 우리 모두가 진정한 의식혁명을 이룰 때 오늘날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대한민국도 민족의 통일을 이루고 세계평화와 인류의 번영을 함께 고민하고 의논하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안국 선생님의 이름 안국(安國), “‘위자안지(危者安之)’, 위태로운 사람을 안녕케 한다."는 정신에 입각해 목민운하로 추진하면 좋을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거나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는 국민이나 무리를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김안국 선생님의목민정신과 함께 추진하면 반드시 대한민국과 대한겨레의 역사를 밝혀 세계평화와 인류의 번영시대를 여는 물길복원과 민생운하가 될 것이다.
현재 김안국 선생님은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이포리에 위치한 기천서원과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에 위치한 설봉서원에서 봄에 제향되고 있다.
소설 광릉숲의 저자 김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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